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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필코 머리를 잘라야지. 며칠 전부터 겨울 내내 기른 머리가 신경이 쓰였다. 건조한 탓에 정전기까지 일어서 하루라도 빨리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몇 번 머리 파마를 하던 미용실을 찾아가 보니, 손님이 두 분 계시는데, 원장님이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신다.

 

그래. 지난달 동네 내과를 가다가 본 그 미용실을 가보자. 길을 건너 그곳에 가니, 마침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마침 김치찜을 데우고 있던 참이다. 머리 긴 아가씨와 중년쯤 보이는 남자가 있다. 나는 순간 남자가 하는 곳은 불편한데... 하는 생각으로 긴 머리 아가씨가 머리를 잘라주길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보조인 듯, 상을 차리기 바쁘고, 미용사는 남자였다. 그냥 나가기는 그렇고 해서 한 번 여기서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남자 미용사는 오늘 처음 왔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보며 말을 걸었다. 자기는 여기서 10년 정도 미용실을 했다고, 어떻게 알고 왔는냐고, 도로변이 아니라, 건물 안쪽에 있어서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사신지 얼마나 되냐고 묻는다. 나는 한 1년 정도 살았다고 했다. 그러자 이 마을이 어떠냐고 묻길래, "이곳은 서울의 숨겨진 마을 같아요..." 하고 대답했다. 

 

 

이곳은 서울의 숨겨진 마을 같아요...

그는 맞다고, 정말 우리 마을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인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이곳은 서울에서 조용하니 살기 좋은 곳이고, 특히 안양천이 가까워서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안양천
안양천

 

안양천이 가깝다는 것은 이 마을을 좋아하게 만든다. 내 걸음으로 천천히 한 7분 정도면 안양천 둑방길에 다다른다. 언제나 걷고 싶으면 쉽게 한가한 안양천으로 가면 된다.

 

뜨거운 여름이면 그냥 둑방길 그늘 밑을 몇 번 오가면서 산책해도 되고, 또 봄이면 벚꽃이 기가 막히다. 이제 한 달이면 벚꽃이 만개를 할 것이고, 난 올 벚꽃도 놓치지 않으리라. 언제 봐도 너무 아름답고 운치 있다. 가을은 가을 대로 단풍이 지는 것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겨울의 황량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서울의 숨겨진 마을. 불쑥 튀어나온 이 말에 아가씨도 정말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내 마음속에서 이곳은 서울의 숨겨진 보물 같은 마을이었나보다. 이렇게 생각 없이 불쑥 나온 단어 숨겨진 마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 이곳에서 살고 있다.

 

그런대로 남자 미용사는 머리를 잘 잘랐다. 너무 짧게 자르면 파마기가 다 없어져버려서 안 좋으니 적당히 잘라 주면서, 나중에 굵게 파마를 하라고 한다. 일단 머리를 자르니 속이 후련하다. 짧아진 머리가 조금 나를 젊어 보이게 한다. 그렇게도 귀찮아서 안 자르던 머리를 자르고, 봄을 맞이한다. 겨우내 귀찮아하던 한 가지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즐겨 먹는 간식거리인 땅콩을 사러 마트에 갔다. 땅콩만 사야지 하고 갔지만, 항상 다른 것들을 사게 마련이다. 통배추가 눈길을 끈다. 3통 들어있는 망이 좀 싸 보이긴 하지만, 3통을 김치로 담그기엔 힘에 부칠 것 같아 그냥 배추 한 통만 샀다. 김치가 다 떨어지는데, 지난번 해 먹었던 겉절이가 생각나 내일 해보기로 했다. 지난달 지독히도 아파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가, 이제 조금씩 기운이 나는 중이다. 사 먹는 김치는 찌개를 끓여 먹고, 신선하게 겉절이로 입맛을 돋우어야겠다. 

 

숨겨진 마을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언제까지 이곳에 살지 모르겠지만, 내평생 처음으로 일 안 하고 한가하게 사는 중이다. 슬슬 일을 하러 나가고픈 마음도 들지만, 이 숨겨진 마을에서 조금만 더 한가롭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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