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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읽었다. 아이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지라 다섯째 아이라는 제목이 끌렸다. 다섯이나 아이를 낳다니! 정말 대단하군!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뭔가 호러 같은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아이가 내 아이로 태어나면 정말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다섯째 아이 간략한 줄거리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직장 파티에서 만나 구석진 곳에서 여러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로 이 사람이 나의 결혼 상대자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다. 넓은 집에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즐겁게 파티를 하는 그런 생활을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큰 집을 원했는데, 그들의 형편으로는 힘들었다. 런던 교외로 좀 나가니 3층짜리 큰 집이 있다. 그 집은 그들의 재정상태로는 좀 버거웠지만, 데이비드의 아버지가 부자여서 집을 사는데 도와주었다. 

 

여러명의 아이들
여러명의 아이들이 생일 파티를 하다

 

 

그들은 결혼하고 한 2년 정도는 빚을 갚고 아이를 낳으려고 했다. 하지만, 해리엇은 바로 임신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아이를 1-2년 간격으로 4명이나 낳았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해리엇을 친정엄마인 도리스가 와서 도와줬다. 그녀는 남편이 죽고 세 딸들의 집을 돌아다니면서 사는 게 낙이다. 하지만, 해리엇의 네 명의 아이를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큰 집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탄절, 감사절, 휴가 때마다 사람들을 초대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아이들이 사촌들과 함께 놀고, 이런 것이 부부에게는 좋았다. 

 

하지만, 다섯째 아이가 태어나고 이 집은 점점 힘들어졌다. 원래 넷째 아이가 태어나고, 해리엇도 힘이 들어 다섯째는 최소 3년 정도 있다가 낳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다시 임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섯째는 뱃속에서부터 남달랐다. 너무 에너지가 넘쳐 발버둥을 쳐서 해리엇은 약을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약을 통해서 아이를 잠잠히 시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발길질을 하고, 그녀가 가만히 쉴 수 없도록 고통을 주었다. 정말 다른 아이들과는 너무 달랐다.

 

한 달이나 일찍 출산을 했는데, 아이는 여느 아이보다 컸다. 핏줄이 보이고, 근육도 있고, 다부지게 생겼는데 눈은 차가웠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식욕이 강하고 힘도 엄청 세었다. 그 아이를 해리엇은 벤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이는 너무 에너지가 넘쳤다. 소리지르고, 분노하고, 부수고.... 정말 이런 아이는 본 적이 없다. 마치 한 마리의 짐승을 보는 듯했다. 아이는 말은 느리지만, 늘 몸을 움직이고 공격적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놀지도 않았다. 해리엇은 너무 당황스럽고 힘들었다.

 

 

사람들이 모인 어느 날 아침 거실에 개가 죽어 있었다. 방문객이 데리고 온 개였는데 죽어 있는 것이다. 수의사는 목이 졸려 죽었다고 한다. 며칠 후 고양이도 죽었다. 벤이 그런 것이었다. 동물들은 벤을 무서워했다. 데이비드와 해리엇, 그리고 사람들은 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해리엇은 벤을 의사에게 데려가 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뭔가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였다. 힘이 세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분노가 넘치고,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점점 해리엇은 아이를 다루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염려되었다. 벤이 커갈수록 더 힘이 세어지고 더 무서워졌다. 사람들은 벤을 특수시설로 보내야 된다고 했다. 부부는 그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검은 차가 와서 그를 데리고 가버렸다. 발버둥치며 소리치는 아이를 강제로 차에 태워서. 해리엇은 너무 맘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모든 가족은 평화를 맛보았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뛰어놀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해리엇에게 이런저런 말도 잘하고, 웃게 되었다.

 

하지만, 해리엇은 밤에 잘 수가 없다. 그 아이가 생각나고 죄책감이 든다. 내가 낳은 아이인데 그렇게 버리다니! 모성애와 반대되는 행동을 한 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몇 날 며칠 잠들 수 없는 나날을 보내다가, 해리엇은 벤을 만나러 간다.

 

5시간이나 운전해서 간 영국 북구의 어린이 요양원은 음산했다. 건물로 들어서자 지독한 냄새가 가득했다. 아이들은 오물을 뒤집어쓰고, 작은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데, 기괴하고 이상하게 생겼다. 모두 정상이 아닌 아이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관리인이 벤을 보여주었는데, 벤은 보호복을 입고 있었다. 그 밑으로 누런 오물이 떨어지고, 아이는 아무런 힘도 없이 혀는 빠져나와 있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곳은 아이들을 요양시키는 곳이 아니라, 온갖 약물로, 주사로 진정시키고 방치하다가 죽이는 곳이었다.

 

해리엇은 자신의 아이가 이렇게 죽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다시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제 집은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아이들은 엄마를 벤에게 빼앗겼다. 해리엇은 벤을 기존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아이를 정상적인 아이로 만들기 위해 힘을 다했다. 하지만, 벤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정원을 손보기 위해 존이라는 사람이 왔다. 그는 지역의 건달로 직업도 없이 되는대로 사는 사람이다. 그가 정원을 가꾸기 위해 일을 하자, 벤은 그를 따라다니고, 그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그의 일에 흥미를 느꼈다.

 

해리엇은 그런 벤을 보며, 존에게 벤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말하자면, 베이비시터인 셈이다. 존은 돈을 벌 수 있으니 기꺼이 그러겠다고 하면서, 날마다 벤을 데리고 자기들의 패거리와 함께 다녔다. 벤은 거칠고 폭력적인 그들이 좋았나 보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집 보다 더 좋아했다. 이렇게 존이 벤을 봐주자 해리엇은 잠시 쉴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 벤이 학교를 가야해서 학교가 끝난 후에 존이 벤을 봐주기고 했다. 존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어서 해리엇에게 돈을 뜯어냈다. 벤을 데리고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하면서 돈을 달라고 하고, 또 다른 이유를 대어서 돈을 요구했다. 데이비드는 이런 경비를 대느라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해리엇의 첫째와 둘째인 루크와 헬렌은 이제 이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들을 기숙학교에 보내달라고 한다. 도저히 벤이 있는 이 집에 살기 싫기 때문이다. 셋째인 제인도 외할머니와 함께 이모네서 지내겠다고 한다. 이제 이 집엔 넷째 폴이 남았다. 

 

폴은 제일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폴이 태어나자 해리엇은 다섯째를 임신했는데, 그 기간에도 너무 힘들어 폴을 돌보지 못했고, 벤이 태어나자 벤에게 온통 힘을 쓰느라 폴은 뒷전이었다. 그래서 폴은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자랐다. 해리엇은 이제 덩치가 크고 폭력적인 벤에게서 비쩍 마른 폴을 보호해야 한다. 

 

존은 어느날 다른 지역에 있는 직업학교를 가야 해서 떠났다. 해리엇은 걱정이 태산이다. 벤을 볼 생각만 해도 그녀는 너무 힘들다. 벤은 상급학교 진학을 해야 되어 새로운 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그 학교는 온갖 문제아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하긴 벤처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를 좋은 학교에서 받아줄 리가 없다.

 

그 학교에서 벤은 문제아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의 힘과 눈빛에 아이들이 따르는 것 같다. 아이들은 이제 시도 때도 없이 해리엇의 집으로 몰려와 냉장고에 있는 모든 음식을 먹어치운다. 음식이 없을 때는 자기들이 음식을 사가지고 와서 해리엇의 거실을 난장판을 만든다. 해리엇은 묵묵히 거실을 치운다.

 

데이비드는 다섯의 아이를 키우느라 돈 버는 일에만 매진을 했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승진도 하고, 대학에 출강도 해서 돈을 벌었다. 복잡하고 삭막한 집 대신 일에 몰두했다. 점점 해리엇과의 사이도 멀어지고 있다.

 

지역뉴스에 청소년 폭동소식이 있는데, 화면을 보니 벤이 있다. 벤과 일당들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면서 해리엇은 벤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의 종족들을 찾아서 빌딩의 어느 구석이나, 지하세계에서 살던가, 아니면 무리를 일으켜 경찰에게 잡혀서 두들겨 맞으며 철장에 갇히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난다.

 

다섯째 아이를 읽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었냐는 인터뷰에서, 도리스 레싱은 두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빙하시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도 내려온다는 한 인류학자의 글이었고, 또 하나는 어느 어머니가 잡지에 세명의 아이를 낳고 네 번째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망쳤다는 이야기를 읽고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아이를 낳고 기른 나에게 정말 흥미롭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만약 벤과 같은 아이가 나에게 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만 해도 나는 감당 못했을 것 같다. 나의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들도 제대로 키우지 못해서 자책하는 날들을 많이 보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아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은 여자에게 모성 본능을 주고, 그런 아이를 감당하는 지혜와 힘은 주지 않았다. 모성 이전에 한낱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정말 이런 아이가 내게 오지 않은 것을 감지덕지 감사하고 살아야 할 뿐이다. 그냥 내게 그런 불행이 닥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뿐이다. 랜덤으로 세상에 뿌려지는 비정상적인 아이를 갖지 않은 것을.

 

어느 누구도 해리엇을 비난할 수 없다. 그녀가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결정을 말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결정으로 희생해야 하는 다른 가족이 있기에 너무 안타깝다. 그녀의 꿈같은 행복한 가족 만들기는 실패했다.

 

만약,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아이를 둘이나 셋을 낳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을까? 아마 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럴 가능성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시도하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집을 살 때부터 자신들의 능력에 맞지 않는 너무 큰 집을 사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 아이들을 터울을 두지 않고 줄줄이 낳고, 친정어머니가 희생했다.

 

자기의 집이고, 자기의 아이들인데, 다른 사람의 희생이 필요했다. 이런 것은 욕심이다. 자신이 살 수 있는 집을 사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숫자의 아이들을 가져야 한다. 이런 점은 데이비드와 해리엇의 잘못이다.

 

도리스 레싱이 다섯째 아이로 벤을 상정한 것은 비정상적인 벤이 불행의 시작이라기보다는 데이비드와 해리엇 부부에게 뭔가 포커스를 맞춘듯하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장애아같은 비정상적 아이를 낳는 것보다는 불행의 근본이 자신들의 가치관에 있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이들 부부는 아이를 많이 낳고 큰 집에서 사는 것을 행복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전통적 가치관 속에서는 여럿의 아이가 집에 복잡대고, 동네를 뛰어다니고 그들이 커서 한몫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대가족 제도 속에서는 조부모와 친척, 이웃들이 함께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아이가 많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현대는 핵가족 시대로 조부모와 같이 살지 않고, 동네에 친척도 없다. 이웃들도 조금 거리를 두고 살고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을 주려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그들은 자신의 힘에 부칠 정도의 큰 집을 사고, 아이들을 많이 낳았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집을 살 때, 데이비드의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아이들은 해리엇의 엄마의 전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어떻게 이들은 생각 없이 아이를 많이 낳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많을수록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아이가 늘어날수록 자신들의 행복이 커진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전통적 가치관이 이젠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가치관은 이제 쇠해서 버려야 하는 무엇이 된 것이다. 많은 아이를 낳는 것이 더 이상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만약 해리엇이 두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한 명이 벤과 같은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벤이 좀 더 다른 양육을 받지 않았을까.  해리엇은 이미 네 명이나 아이들이 있어서 기진맥진하여 벤을 그저 먹이고 보호하고 세상에 적응시키기에 바빴다.

 

내 생각에 벤도 나름 엄마의 사랑을 원했을 것 같다. 자신의 본성이 동물적으로 포학해도 해리엇이 여유를 가지고 벤을 대했다면 좀 더 나아지고, 벤에게 맞는 미래를 계획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자녀에게도 폴처럼 외롭게 지내지 않도록 배려했을 수 있었겠다고 생각해 본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너무 많은 자녀를 낳고, 아이들은 저마다 고통 속에서 상처받고, 유년의 시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이 가족은 누구 하나 행복하지 못했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자신이 감당 못할 일을 저지르고 그것을 감당해 보려고  애를 쓰다가 삶이 다 사라졌다. 아이들은 모두 흩어지고, 그 큰 집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텅 빈 집이 되어버렸다. 데이비드는 재정적인 부분을 감당하느라, 일에 치여서 집에도 제대로 오지 못하고, 그 둘은 점차 소원해졌다.

 

벤과 같은 비정상적인 아이를 낳아서 그 집이 붕괴되었다기보다는 애초에 그들의 가치관이 시대와 맞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에 가깝다. 더 이상 전통적인 가치관을 따르기에는 사회적 구조가 따라주지 않기에 가족을 만드는 일에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요즘도 자녀를 많이 낳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재정적으로 탄탄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아이만 많이 낳는다면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처럼 모두가 힘을 합쳐서 아이를 키워주는 시대가 아니기에 무턱대고 많이 낳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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