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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노년을 보낼까

맨발 걷기하며 본 노인들의 모습

 

어제 오후 집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날도 좋은데 잠시 나가서 걸어 보자고 나왔다. 맨발 걷기가 그리 좋다고 하니, 오래간만에 맨발로 걸어볼까 하고 아파트 뒤편에 보드라운 흙이 있는 곳으로 가봤다. 저기 여러 명의 나이 든 노인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아니, 가까이 가보니 거의 멍 때리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다.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그냥 앉아 있는 노인이 많다. 나이 든 노인들은 한결같이 대화도 없이, 어떤 즐거운 표정도 없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들도 집이 답답해서 나왔을 터. 내가 노인이 되면 저런 노인들의 모습으로 살아갈까? 

 

 

맨발 걷기를 하려고 나왔는데, 가을 공기가 너무 신선해서 내친김에 안양천까지 가보기로 한다. 오후 4시가 넘어서인지 출출한 느낌이다. 편의점에 들러서 에너지바를 한 개 샀다. 계산대 옆에 있는 치킨이 고소한 냄새로 유혹한다. 치킨은 항상 사람을 끈다. 하지만, 지금 치킨을 먹을 때는 아니니, 그냥 에너지바 하나로 만족하고 계산을 치른다. 이젠 카드 받아서 처리하는 것도 개인에게 직접 하게 하고 있다. 할 때마다 카드의 어느 쪽을 넣어야 할지 헷갈린다. 정말이지, 점점 작은 서비스도 받기 어려운 시대가 된다. 말을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카드를 넣고 영수증이 나오면 영수증만 받는다. 건조한 풍경이다. 젊은 남자 알바가 두 명이나 있는데도, 잘 가란 인사도 없다. 

 

안양천을 가려면 육교를 두 번 건너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노인들이 편리해졌다. 육교를 오르기가 내 나이에도 힘들다.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 육교를 건너서 내려가는 것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여름엔 엘리베이터에 에어컨도 나온다. 그래서 잠시 시원한 시간을 갖는다.

 

작은 오솔길을 지나야 되는데, 한 나이 드신 노인이 허리를 구부정하게 해 가지고 걸어가신다. 노인이 되면 다 저 모습이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손은 허리 뒤에 있다. 허리가 힘들어서 허리를 손이 받치고 있단다. 직립보행이 점점 어려워지는 모습이다. 허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제 안양천 둑길에 다 왔다. 안양천을 바라보니 정말 좋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저 아래 물이 흐르고, 새들은 이리저리 헤매며 노래를 부른다. 사잇길 언덕에 심은 장미가 아직도 한창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전거 타는 사람이 여럿 보인다. 어느 나이 드신 노인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니 아직 정정한 느낌이다. 젊음을 붙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노인들의 놀이

 

한 바퀴 둑길을 걸어보자. 잠시 걷는데 여러 명의 노인들이 나무 그늘 아래 둘러앉아 놀이를 하고 있다. 뭐하는 놀이일까 하고 들여다보니, 화투를 치고 있다. 화투를 칠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여기서 만나서 놀자고 했나 보다. 노인들의 놀이 문화가 별로 없다. 그러니, 꼭 도둑 화투를 치는 느낌이다. 몰래 하는 놀이이다.화투는 도박 같은 느낌이라 대놓고 하지 않고 좀 구석진 곳에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 큰돈으로 하는 것이 아닐 텐데도 뭔가 몰래하는 느낌이다. 돈을 걸지 않고 하는 화투판은 재미없을 터. 항상 화투판에는 동전이라도 있다. 그래야 화투 치는 맛이 날 테니까. 놀이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노인을 본다.

 

한참을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앉아서 저 아래 보이는 안양천을 바라보았다. 편의점에서 산 에너지바를 먹으며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자연에 나와서도 핸드폰을 보고 있다. 중독이라 생각한다. 걷다 보면  벤치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도 벤치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다. 핸드폰이 없는 세상에선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서 사셨을까? 별다른 놀이문화가 없었던 옛날엔 노인들은 뭘 하며 즐겁게 살았을까....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하니,  할아버지가 강아지와 함께 걸어오고 있다. 목줄을 안 맨 작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면서 할아버지를 따라간다. 할아버지는 저 강아지가 친구인가 보다. 할머니는 안 계시고 강아지가 할아버지를 즐겁게 해 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이겠지. 할아버지가 강아지로 인해서 활기차 보인다. 할아버지의 놀이는 강아지와 노는 것이다. 이런 놀이는 건강한 놀이다. 할아버지가 강아지 산책을 시키면서 본인의 건강도 좋아질 것이니까 건강하게 해주는 놀이이다.

 

느티나무와 단풍나무가 적절히 해를 가려져서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이런 길이라면 한낮에도 걸을만하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소화도 잘되고 다리도 튼튼해지겠지.... 다시 힘을 내서 걷자.

 

조금 더 걷는데, 벤치에 어느 여자가 옆으로 누워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인데, 그녀의 옷이 특이하다. 보통 할머니들은 편한 바지 차림인데, 그녀는 짧은 미니스커트 정장에 흰 스타킹을 신었다. 정말 특이한 패션이다. 지금 가을로 가는 길목이지만, 스타킹을 신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그 불투명 흰 스타킹이라니.  오래된 정장을 아까워서 한 번 입어본 것일까?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다. 나이에도 안 어울리는.... 그녀는 왜 그런 옷차림으로 공원 벤치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는 걸까? 그녀는 옷을 화려하게 입는 놀이를 하는 것이리라.

 

외국이라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좀 이상하게 보인다. 이런 나의 생각도 편견이겠지. 사람이 어떤 옷을 입던지 그 사람의 자유인데, 나는 마치 그 사람이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미니를 입으면 안 되는가, 흰 스타킹을 이런 날씨에 신으면 안 되는가. 그녀는 어떤 이유로 오늘 그렇게 입고 싶어서 입었을 텐데 말이다. 그녀의 재밌는 놀이일텐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내가 그 모습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나의 고정관념이 생각을 편협하게 하고 있다. 자유로운 세상에 벌거벗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녀를 한참 돈 사람으로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녀가 나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이다. 사람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고 내가 좋은 대로 살겠다는 것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놀이일 것이다.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을 테다, 그녀는 그런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다. 그래서 그렇게 나이에 상관없는 옷차림을 당당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노인이 될까?

 

나는 아직도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제 산책하면서 느낀 것을 적어보았다. 노인이 되어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즐겁게 살까? 아직 롤모델이 없다. 강아지를 키울까, 정원을 만들까. 책을 읽을까.... 노인이 되어서 적당한 취미를 갖는 것이 중요하리라. 또한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버려야 할 것이다. 자유롭게 나의 마지막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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