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상실의 시대를 읽고서

 

어젯밤 상실의 시대를 드디어 끝냈다. 아주 두꺼운 책이라 읽는데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한 3일 정도 걸린 것 같다.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다. 제목을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떤 책을 예전에 읽었는데,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너무 유명한 작가라서 꼭 한 번 천천히 읽고 싶었다.

소설을 읽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동안 마음에 관한 책, 의미 있는 삶, 삶의 동기를 주는 책, 지혜를 주는 책 위주로 읽었는데, 뜬금없이 소설이라니.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저자의 위력이 대단하다. 그의 이름값을 직접 체험하고 싶었나 보다.



상실의 시대라는 책 제목도 근사하다. 뭔가 세련되고 심오한 내용이 있을 것 같다. 제목도 이 책을 선택하는 데 한몫했다. 아무튼 그래서 이 두터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상실의 시대는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 한다. 자전적 소설이라 하니 더 호기심이 간다. 그의 삶의 기록이구나 생각하니, 어처구니없는 소설적 허구라기보다는 어떤 인생의 이야기같이 느껴진다. 누구나 있을 법한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상실의 시대 줄거리와 결말



와타나베라는 사람이 젊은 날 겪은 사랑과 이별, 그로 인한 슬픔과 아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상실감을 그린다. 17세 친한 친구 기즈키가 어느 날 재밌게 콜라 내기를 하며 당구를 치고 그날 자살을 한다. 이 사건은 와타나베에게 씻을 수 없는 충격을 준다. 아마 성인이 되어서 이런 경험을 하면 좀 더 마음을 수습하기에 쉬웠을 것이다. 그에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성장이 완성되지 않은 때, 유일한 친구가 너무 평범한 날에 그냥 한마디 말도 없이 죽는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모른다. 그 심정이 말할 수 없이 괴로웠을 것이다.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나오코를 만나게 된다. 나오코는 죽은 기즈키의 여자 친구였다. 와타나베와 기즈키, 나오코는 셋이서 아주 친하게 지냈었다. 나오코를 만나니, 기즈키를 만난듯하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그 시절을 추억하기에 좋다. 나오코도 와타나베를 통해서 기즈키를 추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그들만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만났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오코가 20살이 되던 생일날, 나오코는 와타나베와 처음으로 같이 잔다. 한 번도 기즈키와 같이 잘 수 없었던 그녀가 와타나베와는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아주 이상한 경험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걱정하고, 어느 날 나오코가 정신요양원에 있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그녀를 찾아서 요양원을 가서 나오코와 같이 한 방을 쓰는 레이코와 만난다. 그녀는 30대 중반으로 여러 마음의 병을 가지고 그 요양원을 오게 되었다. 그렇게 레이코와도 친해지고, 두어 번 요양원을 방문해서 나오코와 시간을 갖는다. 그들은 친구 기즈키를 생각하고 서로를 연민하며 걱정한다.

어느 날 와타나베는 식당에서 미도리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와타나베가 수강하는 과목을 같이 듣는데, 와타나베를 기억하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서로가 잘 통한다고 생각하고 자주 만나서 시간을 갖는다. 미도리는 애인이 있는 여자이고, 아주 바쁘게 생활한다. 그녀는 생기발랄하고 직선적이면서 거침이 없다. 미도리는 보수적인 애인과 헤어지고 와타나베를 사랑하게 되지만, 와타나베의 마음속엔 나오코가 있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전부를 주지 않는다.

 



그는 아직 나오코에 대한 연민이 남아있어서, 나오코가 요양원에서 나와서 자기와 같이 생을 일으키길 바란다. 하지만, 나오코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더 병세가 심해져서 전문 정신병원에서 집중치료가 요하는 상황이 되었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그녀가 다시 삶을 붙들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그녀는 전문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와 자살하고 만다. 아마 나오코는 자신의 허약한 존재가 와타나베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듯하다. 그녀는 늘 와타나베에게 다른 사람과 사랑하라고 말해왔다. 자신이 와타나베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과 병세로는 그를 더 힘들게 할 것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삶을 놓아버렸다. 그와의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할 바에는 내가 가버리는 것이 그를 위한 것이라고. 아니면, 그녀는 와타나베를 또다시 잃고 싶지 않아서 그녀가 먼저 그렇게 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미도리는 와타나베를 사랑하지만, 그에게 있는 어떤 가림막을 도저히 걷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와 헤어지려고 한다. 하지만, 와타나베를 사랑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다. 와타나베도 점점 마음이 미도리에게 열린다. 그즈음에 나오코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는 다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짐을 챙겨서 여행을 떠난다.

한 달 간의 여행에서 돌아온 그에게 레이코가 찾아온다. 레이코는 와타나베와 함께 나오코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싶어서 왔다. 요양원에 있으면 나오코가 생각나고,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와타나베를 만나러 왔다. 그들은 진심으로 나오코를 애도하며 마지막 밤을 불태운다. 아마도 와타나베는 레이코를 나오코의 현신이라 생각하고 그날을 보낸 것 같다. 그들은 뜨겁게 그 밤을 보내면서 나오코를 보냈다.

 


다음날 레이코를 배웅하며, 와타나베는 전화를 건다. 미도리에게.... 너를 만나고 싶다고, 너에게 모든 걸 다 말하고 싶다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너를 만나는 일이라고.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 미도리의 말에, 와타나베는 여기가 어딘지....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을 예전 젊었을 때 읽었다면, 너무 성적인 내용이 적나라해서 거부반응이 많았을 것이다. 그때는 철저한 기독교인으로 이런 성적인 내용이 내겐 힘들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종교적인 생각도 많이 달라져서 이젠 이런 내용이 힘들지 않다. 오히려 이해 가는 부분이 많다.

와타나베는 학교 선배의 성적 취향으로 원나잇을 같이 하기도 한다. 남자로서 하는 성관계에 그리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에서의 성관계에는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이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에만 성관계를 한다. 이것이 성에 대한 와타나베의 생각이다. 불특정 한 사람과의 성관계는 단지 육체적인 시간이지만, 어느 누구를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진심으로 어떤 거리낌도 없어야 그를 온전히 사랑하는 모습이다.

상실의 시대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이렇게 유명한지 알겠다. 그는 글을 아주 잘 쓴다. 성관계를 묘사할 때도, 아주 외설스럽지 않고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것이 그의 능력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그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나 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날에 친구를 잃은 상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삶의 가치관을 세우는데 얼마나 영향을 많이 끼치는지 말해주는 듯하다. 살면서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우리는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일들은 우리에게 상실을 경험하게 해 준다. 주위의 누군가가 죽는다든가, 그렇게 친했던 친구와 헤어진다든가, 어떤 목표를 잃어버린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상실이 있다.

젊은 날에는 특히 더 많은 인간관계를 갖게 된다. 동네 친구들, 학교 친구들, 교회 친구들.... 이런 친구들이 나이 들면 남은 게 거의 없다. 우린 친구를 다 잃고 외롭게 살아간다. 그때의 친구들은 추억 속에만 살아있다. 특히, 마음으로 사랑했던 사람들.... 실제로 사랑했던 연인도 이젠 다 가버렸다. 이젠 혼자다. 주위를 돌아보면 모두 혼자다. 혼자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  마지막 장면에 와타나베가 미도리를 찾는 장면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해준다. 나오코는 갔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살 수 있는 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사랑한다면,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그래서 와타나베는 살기 위해 미도리를 찾은 것일까?

나의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가족이 내 삶의 이유다. 남편과 자녀가 내 삶의 이유다. 그들을 사랑하는 동안 난 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상실은 있다. 그리고 상실 만을 붙들지 말고, 살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 있는 한 삶을 계속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