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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산책을 나가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간다. 남편과 요즈음 저녁 식사 후 산책을 계속하고 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니 한결 속이 편해진 느낌이다. 그래서 저녁 산책은 꼭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아파트에서 작은 상가들을 지나 건너편 아파트를 가로질러 가면 고등학교가 나온다. 요즘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산책코스다. 고등학교를 들어가서 운동장 가장자리를 천천히 돈다. 오늘은 고등학교 감나무에 감이 잘 익어서 하나 따서 먹었다. 키 큰 남편이 한 개 따서 반을 나눠 주었다. 아주 잘 익어서 달고 맛있었다. 감나무에서 직접 감을 따서 먹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서울에서 말이다. 내가 살던 마을엔 감나무가 없었다. 추운 지역이라 그런지 어릴 때 감나무를 본 적이 없다. 결혼을 하고 시댁을 가니, 그 마을에 감나무가 있었다. 참 신기했다. 감을 먹고 열심히 운동장 가장자리를 돌았다. 날도 덥지 않고 걷기 좋은 날이다.

 

시아버지의 노년의 삶

 

남편과 시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다. 시어머니께서 작년 여름에 돌아가시고 이제 아파트에 홀로 계신다. 자식들이 돌아가며 반찬을 해드리고 찾아뵙지만, 얼마나 외로울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외로운 노년이다. 80이 넘어 친구들도 다 떠나고, 자식들은 가끔 오고 홀로 외롭게 사신다. 하지만, 뜬금없이 지금 자식과 같이 사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아 하신다. 처음부터 같이 살았다면 아무래도 편했을 텐데, 이제 같이 사는 것은 아버님도 자식들도 쉽지 않다. 서로의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세대차이가 나기 때문에 같이 살아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냥 부모 자식은 사실 대화가 통하기가 쉽지 않다.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이 같이 살면 더 외롭다. 같이 있는데 더 외롭다. 

 

오늘 낮에 (오베라는 남자)라는 영상을 보았다. 유튜브에서 해주는 영화 리뷰 채널에서 잠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보았다. 오베라는 나이가 많이 든 남자가 아내가 죽자 혼자서 사는 것이 너무 외로워서 자살을 시도한다. 아침마다 꽃을 들고 아내의 무덤에 찾아가 오늘은 꼭 당신 곁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집에 와서 자살하려 한다. 하지만, 자살하려고 하는 매 순간마다 이웃들이 찾아오고, 뭔가 요청하고, 할 일이 생기고 해서 자살을 못한다. 그렇게 그는 마을 사람들을 돕다가 어느 추운 날 침대에서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노인의 삶에 대해 보여준다. 지독한 외로움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빨리 죽어버리고 싶은 한 노인을  잘 표현한다.

 

홀로 남은 노년의 삶

 

배우자가 죽고 홀로 남은 노년의 삶이란.... 매일 홀로 일어나 홀로 밥을 먹고 홀로 TV를 보고 아무 대화 상대도 없이 그렇게 홀로 산다. 정말 외롭기 그지없는 삶이다. 시아버지를 보면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젊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열심히 일하고 딱히 좋아하는 취미도 만들지 못했다. 그저 밥 먹고 잠시 동네 한 바퀴 운동하고, 다시 들어와 TV를 보는 게 끝이다. 아들들이 자주 전화를 드리지만 그저 안부를 물을 뿐이다. 친구처럼 길게 말하지 못한다. 길게 말할 주제도 딱히 없다. 정말 쓸쓸한 노년이다. 

 

우리 부부는 같이 산책하고 같이 드라마도 본다. 지금 우리는 같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하지만, 한 명이 먼저 떠난다면 정말 외로워질 것이다. 홀로 남겨진 노인은 정말 너무 외로운 시간이 기다린다. 생각만 해도 싫다. 혼자인 삶, 말할 사람이 없는 삶, 생각하기도 싫다.

 

남편의 선배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그는 젊어서 이혼하고 그 이후에 홀로 계신 어머니와 함께 산다. 그 어머니는 얼마 전까지 아들이 재혼을 하고 손주를 안겨주기를 바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혼처를 부탁하고 아들이 가정을 다시 이루고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80이 넘고 건강이 안 좋아지니 이젠 아들에게 결혼하라는 말씀을 안 하신다.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사는 지금이 좋으시다. 선배는 다정한 성격에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대한다. 온갖 좋은 것을 가져다 어머니에게 드리고, 요리도 잘해서 어머니를 잘 돌보아 드린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이제 아이가 되셨다. 예전 힘 있을 때는 아들이 일가를 다시 이루기를 바랐지만, 이젠 아들이 떠나는 것이 두렵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 아들이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이런 자식을 곁에 두고 있다면 복받은 노인이라 할 수 있다. 자식들은 부모와 같이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다정하고 부모를 위하는 자식은 모든 부모들이 갖고 싶은 자식일 것이다. 복이 많으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못할 것 같은데, 남자인데도 어머니를 위해 얼마나 정성을 다하는지 놀랍다. 

 

생의 끝자락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다. 배우자가 끝까지 함께 있으면 좋지만, 한 명은 홀로 남게 된다. 홀로 남게 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 홀로 남겨진 시간이 짧기를 바랄 뿐이다. 함께 끝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아주 짧게 혼자이고 싶다. 정말 아주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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